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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음악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 김참치 트리오, 모은의 기록

    2026년 9월 30일 공연 · 글 모은 · 피아노 김참치, 베이스 김종현, 드럼 양현수.

    글·사진/영상: 모은. 2026년 9월 30일 김참치 트리오 공연의 관객 기록입니다.

    오래된 음악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트리오가 〈Confirmation〉을 연주하던 중이었다. 빠르고 촘촘한 비밥을 정신없이 따라가는데, 그 사이로 너무 익숙한 선율이 몇 마디 스쳐 갔다. 곱씹어보니 〈My Grandfather’s Clock〉,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였던 것 같다.

    "헐 방금 그거 뭐였지??"

    재즈에서는 즉흥연주 중에 다른 곡의 멜로디를 슬쩍 끌어오는 일을 quotation이라고 한다. 19세기의 선율이 1940년대 비밥을 통과해 2026년의 작은 재즈클럽에 나타난 셈. 오래된 음악을 고이 모셔두는 대신, 지금의 연주 안으로 불러내 알아들은 사람과 농담을 나누는 방식이다.

    김참치 트리오는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은 재즈를 연주합니다."

    공연 전에는 그저 멋진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낡지 않는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첫 곡 〈Donna Lee〉부터 그랬다.

    천천히 귀를 열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이 처음부터 빠르게 달려 나갔다.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솔로를 하면 다른 두 사람이 길을 열어주었고,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정확하게 다시 만났다.

    김참치 트리오 2026년 9월 30일 공연 기록 · 모은

    첫 곡 하나로 "우리는 이렇게 노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솔로만큼이나 솔로가 끝난 뒤의 순간을 좋아한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나갔던 사람이 다시 두 사람에게 돌아오고, 따로 움직이던 시간들이 하나의 박자 안에서 맞물리는 순간 말이다.

    내가 재즈 공연에서 늘 눈이 바쁜 이유도 아마 그것일 것이다. 누가 얼마나 잘하는지보다, 사람들이 서로를 듣는 모습이 보고 싶다.

    첫 곡의 속도에 정신없이 휩쓸리고 난 뒤, 〈Stella by Starlight〉

    이날은 일부러 피아노 오른쪽, 건반 위를 움직이는 손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지난 공연 이후 피아노 트리오의 재미를 조금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앉는 자리마다 시야가 달라지고, 감상도 그만큼 달라지는 것 같다. 재밌다.

    김참치님의 손은 건반 위를 크게 오갔다. 힘껏 밀어붙이며 소리를 한껏 부풀렸다가, 다음 순간에는 손끝의 힘을 걷어내듯 소리를 낮췄다. 금방이라도 감정이 터질 것처럼 몰아가다 슬쩍 물러서고, 이제 숨을 돌리나 싶으면 다시 잡아당겼다.

    소리의 크기가 달라질 때마다 손의 모양과 몸의 움직임도 함께 달라졌다. 그래서 이 곡에서는 듣는 일과 보는 일이 좀처럼 분리되지 않았다.

    강하게 치는 순간보다, 강하게 치다 갑자기 힘을 빼는 순간이 더 크게 들렸다. 이 강약은 단순한 볼륨의 차이라기보다 감정의 거리를 조절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왔다가 물러서고, 다시 예상보다 가까운 곳까지 들어오는 것.

    공연 내내 가장 많이 바라본 것은 결국 그 손이었던 것 같다.

    〈Taking a Chance on Love〉에서는 그 모습이 더욱 선명했다. 피아노를 보고 있으면 드럼이 치고 들어왔고, 드럼으로 시선을 돌리면 베이스는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다시 피아노를 보면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내 눈은 하나인데 보고 싶은 것은 너무 많았다.

    누군가 말을 끝내면 다른 사람이 받고, 때로는 중간에 끼어들고, 어느 순간에는 세 사람이 동시에 웃는 것처럼 겹쳤다. 재즈를 흔히 ‘악기들의 대화’라고 하지 않는가! 음악을 듣는다기보다 세 사람의 유쾌한 수다를 바로 옆에서 엿듣는 기분이었다.

    〈When It’s Sleepy Time Down South〉에서는 베이스가 천천히 노래하기 시작했을 때 마음을 빼앗겼다. 원래 사람이 부르던 멜로디를 피아노와 베이스가 나누어 연주했는데, 베이스가 앞으로 나와 멜로디를 가져갈 때의 느긋함이 좋았다.

    낮은 음을 하나씩 건네는데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어디로 갈지 이미 알고 있어서 굳이 힘을 줄 필요가 없는 사람의 여유처럼 들렸다. 피아노가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면, 베이스는 낮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참치 트리오 2026년 9월 30일 공연 기록 · 모은

    그 목소리를 시선으로 귀로 손박자로 좇는 과정이 즐거웠다.

    굵은 현 위를 가볍게 뛰어다니는 모양이 꼭 스텝을 밟는 것 같았다. 저렇게 큰 악기가 저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소리는 묵직하게 바닥을 울리는데, 손은 그 위를 사뿐히 건너다니고 있었다.

    이날의 연주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런 움직임이었다. 손가락과 발, 시선과 소리가 계속 서로를 향해 움직였고, 그 움직임은 객석의 나에게도 옮겨왔다. 고개를 까딱이고 발끝으로 박자를 세다 보니, 어느새 나 역시 그 음악 안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곡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건 연주자들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자유로움이다

    가져오고, 바꾸고, 엉뚱한 곳에 끼워 넣고, 알아듣는 사람에게 슬쩍 눈을 찡긋한다. 그날 내가 느낀 두 번째 감각은 그런 유희였다.

    2부의 〈Crazeology〉에서 〈Anthropology〉로 넘어가던 순간이 그랬다. 인터미션이 끝났지만 객석은 아직 어수선했다. 사람들이 자리에 돌아오고 잔을 채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피아노가 슬그머니 연주를 시작했다.

    어, 시작한 건가?

    생각하는 사이 드럼과 베이스가 하나씩 들어왔고, 몇 초 전까지 제각각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어느새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금 연주 속으로 모두를 빠져들게 하는 마법같은 순간이다.

    시작과 끝을 다르게 둔 연주들도 있었는데, 사실 곡이 바뀐 줄도 몰랐다! 연주가 끝나고서야 〈Crazeology〉와 같은 계열의 코드 진행 위에서 멜로디만 바꿔 〈Anthropology〉로 넘어갔다는 설명을 들었다. 재즈를 잘 알았다면 그 순간 짜릿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고 들어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끌려가다가, 나중에야 그 안의 장난을 알게 되는 것.

    아는만큼 보인다지만, 음악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지 않은가! 이해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그 즐거움이 궁금증을 불러오기도 한다

    〈Just in Time〉을 들을 때는 이유 없이 행복했다.

    정말 빠른 연주였다. 그 속도에서 가장 오래 눈에 밟힌 것은 드럼이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도 음악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았다. 오히려 세 사람이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바닥을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쪽에 가까웠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연주는 더 아슬아슬해지는데, 드럼이 그 중심을 놓치지 않기에 마음 놓고 그 속도에 휩쓸릴 수 있었다.

    특히 피아노가 잠시 빠지고 베이스와 드럼만 남았던 순간이 기억난다. 베이스는 쉼 없이 앞으로 걸었고, 드럼은 그 걸음에 탄력을 붙였다. 두 악기만으로도 음악은 이미 팽팽했다. 그 위에 피아노가 다시 들어왔을 때, 공간이 몇 배는 커지는 것 같았다. 리듬만 있던 자리에 화음과 멜로디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비어 있었기에 다시 채워지는 순간이 폭발할 수 있었다.

    무슨 주법이고 어떤 화성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웃음이 났다. 행복했다!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를 굳이 설명한다면 아마 이런 순간 때문일 것이다. 좋다는 감각이 이해보다 먼저 도착한다. 그 뒤에야 "왜 좋았지?" 하고 돌아보게 되고, 이유를 하나 알아내면 다음 공연에서는 전보다 하나가 더 들린다.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

    김참치 트리오 2026년 9월 30일 공연 기록 · 모은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공연이 〈Autumn in New York〉에서 다시금 속도를 줄였다.

    공연 후반, 김참치 연주자님은 뉴욕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도 음악을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뉴욕에서 자기보다 훨씬 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잘하고 못하고, 얼마나 새로운 음악을 하느냐보다 다른 무언가를 보았다고. 그곳에서 받은 감동을 오늘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연주가 시작됐다.

    피아노 한 음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고, 베이스는 낮은 곳에 오래 머물렀다. 드럼은 그 뒤에서 시간을 조용히 지켜주었다. 앞에서 마음껏 달려온 뒤라 그 느림이 더 크게 들렸다.

    나는 신나는 재즈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순간에도 마음을 빼앗긴다. 재즈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음악이면서도, 언제 멈추고 얼마만큼 비워두어야 하는지를 아는 음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백 속에서는 연주를 ‘보는’ 대신 가만히 듣게 되었다. 앞선 곡들에서는 세 사람이 서로를 듣는 모습을 좇았다면, 이 곡에서는 오히려 그들이 남겨둔 자리에 내가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공연 중간중간 마다, 김참치님은 멤버들을 소개했다.

    "드럼에 양현수, 베이스에 김종현, 그리고 피아노 치는 김참치입니다."

    박수를 많이 보내주시는 게 가장 좋고, 그다음은 연주자의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거라고 했다. 이름 하나가 기억될 때마다 1원씩 버는 셈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인데 공연이 끝난 뒤에도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날 무대에는 오래된 곡의 이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의 이름도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작곡가가 만든 곡을 지금의 연주자가 자기 몸을 통과시켜 다시 연주하고, 그것을 들은 누군가는 그날의 소리와 함께 연주자의 이름을 기억한다. 음악은 그렇게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이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동은 객석과 무대 사이에서도 계속 일어났다. 연주자들이 발로 박자를 타고 서로의 솔로를 들으며 웃으면 객석에서도 웃음과 박수가 나왔고, 그 반응을 받은 연주자들은 다시 더 신나게 연주했다. 김참치 역시 객석이 사람들로 가득 찬 모습을 보면 자신들도 연주하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즐거움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무대에서 객석으로, 다시 객석에서 무대로 돌아왔다. 그날 공연장에서 느낀 세 번째 감각은 전염이었다.

    마지막 인사도 좋았다.

    재즈가 어떻고 하는 것을 기억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는 옆에 있는 사람과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혹시 공연장에 오기 전에 싸웠다면 화해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듣다 보니 그 말이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와 닿아 있었다.

    누군가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듣는다. 누군가 앞으로 나오면 다른 사람이 물러난다. 각자 한참 제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 같은 시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까지 어느 순간 같은 박자를 타게 된다. 움직임은 유희가 되고, 유희에서 생긴 즐거움은 사람 사이로 번진다. 나는 재즈의 그런 성질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오래된 음악이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남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다시 꺼내고, 자기 식으로 바꾸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함께 즐기고, 그 즐거움을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네기 때문에 살아남는다.

    그날 나는 1930년대의 노래와 1940년대의 비밥을 들었지만, 과거를 구경하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이 현재형이었다.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은 음악이라는 건 결국…

    공연장을 나온 뒤에도 발끝에는 한동안 박자가 남아 있었다.

    김참치 트리오 2026년 9월 30일 공연 기록 · 모은

    오래된 음악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계속 사람 사이를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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